1937년 폐쇠적인 영국 기숙학교에 스페인 귀족출신의 피아마가 전학을 오면서 벌어지는 균열에 대한 이야기다.
기숙학교의 실세는 허리에 빨간 끈을 두른 아이들이다. 이들은 다이빙 교사 미스G의 제자들이다.
모두들 미스 G를 선망하지만 반장 디(사진 중앙)의 미스G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스승과 제자 이상이다.
미스 G는 예술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열망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기숙사에 갇혀 세상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며 겪은 모험을 들려준다. 이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그녀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 빵을 사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미스 G 와 그녀의 제자들이 쌓은 세계는 견고했다. 미스G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기숙사 밖 세상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그러나 모든 환상이 그렇듯 진실 앞에서는 초라해진다. 스페인에서 전학생이 오면서 예쁜 거짓으로 뒤덮인 세계는 서서히 균열을 맞는다.
전학생 피아마의 뛰어난 다이빙 실력을 보고 미스 G는 그녀를 눈여겨본다. 외부와는 단절된 기숙사에 살아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들과 달리 피아마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미스 G는 자신과 그녀가 같은 부류라며 피아마를 유혹한다. 그녀가 오기 전까지 다이빙 반의 기준이었던 반장 디는 위기감과 질투심을 느낀다.
피아마는 미스 G의 모험이 모두 소설에서 가져온 이야기라 말해버린다. 우상과도 같은 미스 G의 이미지에 금이 간다. 그럼에도 미스 G는 그녀를 더 집착하고 편애한다. 피아마는 미스 G의 어긋난 사랑이 거북하고 불쾌하기만 하다. 미스 G의 달라진 태도가 모두 피아마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해 디는 피아마를 동경하면서도 시기한다. 이러한 세명의 관계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시작과 피아마의 등장 그리고 결말장면에 모두 강이 등장한다. 기숙사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곳임을 의미하고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암시할 수 있는 상징이다.
아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상인 미스 G의 애착과 환상으로 인해 현실을 부정했다. 피해자에게 되려 책임을 묻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순수함 속 잔인함이 엿보였다. 마지막 믿음마저 배반한 미스 G를 목격하고 충격과 배신감으로 굳어있는 디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조각날 대로 조각난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순간이 담겨있었다.
진실에 손을 들긴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지옥이 있다. 영화 도입부의 디는 물결에 흐름대로 떠다니는 나룻배에서 미스 G와 대화하고 있었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디는 나룻배를 타고 기숙사에 나가 진짜 세계를 마주한다.
10대 소녀들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그려진 영화다. 보는 내내 서늘했고 차가운 색조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독보였다. 결코 맘 편히 볼만한 장르는 아니지만 배우들의 표정이 한동안 기억에 남을거 같은 영화였다. 근대 영국 기숙사물이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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